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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 시대에서 경험의 시대로

[채움/신직업 리포트]

신직업 리포트 | 전문가 칼럼  기술과 혁신, 창의와 비즈니스, 인간과 행복을 주제로,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 현상필 CJ파워캐스트 미디어사업 본부장, 홍정민 휴넷 에듀테크연구소 소장의 칼럼을 연재합니다.


불과 20여 년 만에, 정보의 시대에서 콘텐츠 중심의 시대로의 변환을 겪으며 이를 둘러싼 생태계에도 엄청난 변혁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생태계에서 소비자를 넘어, 참여자로서 길을 찾고 싶다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지식의 대상으로 출발한 정보, 문화의 중심 콘텐츠로 진화하다


80년대를 관통하던 PC통신 시대와 90년대 후반부터 사회문화의 변화를 주도해 온 인터넷 시대는 큰 맥락에서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정보’에 대한 검색과 획득을 위한 기술적, 문화적 흐름이자 진화 과정이었다. 물론 PC통신부터 본격화된 비대면 대화, 소위 ‘채팅’을 먼저 떠올리는 이들도 있겠으나, 도서관과 비교해 빠르고 효과적인 정보의 전달 매체로 PC통신은 혁신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인터넷 시대에 이르러 그 효율은 압도적인 기세로 확산되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민간과 공공의 영역을 아울러 방대한 양의 정보가 데이터베이스로 체계화되어 왔고, 이제 정보의 탐색은 당연히 인터넷이 시작과 끝이 된 시대이다.







어쨌든 이 모든 과정은 ‘정보’를 대상으로 이루어 온 역사이다. 하지만 변화는 지속된다. 체계화되고 일련의 규칙을 가진, 또는 사용자의 요구에 따라 사전에 설계된 정보 개념과 달리 ‘콘텐츠’라는 용어가 빈번히 사용되기 시작했다. 컴퓨팅 기술과 저장 용량, 그리고 네트워크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하면서, 인터넷 사용자는 영상과 음원을 제한 없이 이용하게 되었고, 그 개체를 정보가 아닌 ‘콘텐츠’라는 용어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런 커다란 기술과 문화의 변화는 불과 20여 년 전후로 흘러온 과정이다.


유선 네트워크와 개인용 컴퓨터를 기반으로 발달해 온 인터넷 시대의 최대 과제는 이동성 제한을 극복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통신 네트워크 기업들의 치열한 경쟁을 기반으로 모빌리티를 향한 장벽은 허물어졌고, 이제 콘텐츠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생활에 적어도 기술적 장벽은 없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콘텐츠를 매개로 무섭도록 성장한 매체들을 일상생활에 품고 살고 있다. TV나 라디오가 아닌, 유튜브를 비롯한 유력 플랫폼들과 소셜미디어들이다. 


수많은 분석과 논쟁들은 차치하고, 콘텐츠의 두 가지 특성에만 주목해보고자 한다.

첫째, 콘텐츠에 대한 높아진 접근성과 방대해진 분량이다. 과거 익숙했던 접근은 사용자가 콘텐츠를 소비하며 비용을 지불할 것인가 여부였다. 하지만 다수의 플랫폼들(또는 성공해서 살아남은 이들)이 트래픽을 기반으로 한 광고를 사업모델로 설정하며 콘텐츠 소비의 유료 여부는 무색해지고 말았다. 동시에 플랫폼들은 최대한 많은 양의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이 생존을 위해 중요해졌고, 이는 콘텐츠 제작이 상업 프로덕션의 전유물에서 다수의 사용자들에게 개방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아무튼 이러한 과정에서 제작되고 누적되는 콘텐츠들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빅데이터’라는 용어는 누군가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불가피한 기술적 대응에 좋은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봐야할 것 같다.


두 번째 특성은 짧고 간략하게 구성된 콘텐츠의 가치가 주목받는 점이다. 기술적 여건이 향상되며 고화질 대용량 콘텐츠의 제작과 배포가 쉬워졌으나, 소비자가 항상 이런 콘텐츠만 원하는 것은 아니다. 모바일이 디지털 환경의 대세가 되어가며 비디오 영역을 중심으로 짧은 분량의 콘텐츠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 중이다. 분석가들은 소셜미디어에 익숙해진 젊은 세대의 취향 등을 사유로 ‘Short-form video’, ‘Short clip’ 수요 증가를 이야기하지만, 사실 수년 전에도 ‘스낵 컬처’ 등의 표현으로 이와 같은 경향을 언급하곤 했다.


왜 이런 현상이 강화될까에 대해 골몰하기 보다는 그 현상 자체를 들여다보자. 중국판 유튜브라 불리는 ‘콰이 쇼우’는 짧은 동영상을 공유하는 소셜미디어 성향의 플랫폼이다. 동영상의 길이가 5분에서 최근 15초까지 짧아지는 경향을 이 플랫폼에서 볼 수 있다. 콰이쇼우를 필두로 쇼트클립 트렌드는 2018년 현재 중국 에서 가장 핫한 인터넷 트렌드이다. 또 다른 왜 이런 현상이 강화될까에 대해 골몰하기 보다는 그 현상 자체를 들여다보자. 중국판 유튜브라 불리는 ‘콰이 쇼우’는 짧은 동영상을 공유하는 소셜미디어 성향의 플랫폼이다. 동영상의 길이가 5분에서 최근 15초까지 짧아지는 경향을 이 플랫폼에서 볼 수 있다. 콰이쇼우를 필두로 쇼트클립 트렌드는 2018년 현재 중국 에서 가장 핫한 인터넷 트렌드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모바일 뉴스매체 ‘NowThis’의 경우 평균 2분 여의 비디오 뉴스 콘텐츠를 모바일과 소셜미디어를 대상으로 제공한다. 전통적인 뉴스매체에 익숙한 이들은 어색할 수 있지만, 텍스트 기반의 분석이나 르포보다 영상 기반의 사실 전달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을 겨냥한 전략이다. 또 다른 미디어 플랫폼 Quartz도 모바일 뉴스 전문 매체이다. Quartz는 텍스트 기반의 뉴스를 제공하나, 모바일 채팅 방식을 통해 사용자가 선호 콘텐츠를 탐색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을 활용한다.

데이터의 용량과 속도, 이동성의 장벽이 사라지고, 방대한 영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무한히 생산되고 있는 현 시기에, 콘텐츠는 그 자체의 정보 가치 못지않게 소비하는 방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주고 있다.






콘텐츠 생태계와 산업 지형에서 어떤 역할과 역량으로 참여할 것인가 


사실 이 글의 주제는 콘텐츠의 소비가 아닌, 어떻게 콘텐츠 생태계에 참여할 것인가이다. 하나의 시나리오로 출발해보자. 스포츠 종목 중 지금 한국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분야는 프로야구이다. 그 인기를 반증하듯 프로야구는 시기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지상파와 케이블 채널들이 앞다투어 생중계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시청자(라기 보다 콘텐츠 소비자)들은 티브이와 모바일 등 다양한 경로로 경기를 즐긴다. 9회로 공격과 수비가 구분되어 있는 야구 경기는 경기 구조상 최소 18회의 브레이크 타임이 있고, 이는 곧 광고주들에게 그만큼의 마케팅 기회를 의미한다. 지속적으로 높은 인기, 다양한 연령과 직업군의 시청자 집단은 광고주들에게는 결코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과거에는 없던 기술적 난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스포츠 이벤트가 다수의 플랫폼에서(지상파, 케이블채널, 모 바일, 인터넷 포털 등) 동시다발적으로 공개되면서, 광고 콘텐츠의 편성이 이전과 달라져야 하는 과제가 생긴 것이다. 경기 내용이야 어느 플랫폼이든 동일하게 전달되어야 하지만, 플랫폼마다 광고주가 다르니 on-air 되어야 할 광고 콘텐츠는 각각 달리 편성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이런 콘텐츠의 편성 기술과 전략의 문제는 프로야구 경기가 끝난다고 종료되는 것이 아니다. 경기가 끝나면 해당 콘텐츠는 하이라이트 중심으로 잘게 쪼개어지고(클리핑), 재가공되어(재제작) 방송과 인터넷포털 등의 경로로 다시 소비된다. 물론 이 시점에도 광고 콘텐츠는 해당 플랫폼의 계약을 기준으로 또다시 편성되어 올라가게 마련이다. 모든 과정이 끝나고 나면 한 번의 스포츠 이벤트는 많은 종류의 콘텐츠를 양산해낸다. 이전보다 훨씬 데이터 규모가 증가한 콘텐츠들은 각각 체계적으로 저장, 보관(아카이빙) 된다. 이 시나리오를 다시 정리 해보자.


콘텐츠의 소비 경로가 풍부해지고, 콘텐츠의 유형도 방대해지면서 디지털 파일 형태의 미디어 콘텐츠를 능숙하게 편집, 가공, 보관·관리하는 노동력 수요가 이전에 비해 확연히 증가했다. 이는 과거 아날로그 중심의 미디어 콘텐츠 시장과는 다른 경향이다. 방송과 영화를 중심으로 미디어 콘텐츠 시장의 가치사슬이 비교적 단순했던 과거에는 콘텐츠의 제작 이후 소비 경로나 재판매 빈도가 높지 않았기에 그 변화는 더 두드러진다. 많은 이들이 콘텐츠의 제작 환경에 디지털화가 급속히 이루어지면서 노동력의 수요는 축소될 것이라 예상했고, 실제로 사라진 역할들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새로운 역량과 역할에 대한 요구로 채워지고 있다. 급속한 디지털화는 하드웨어 인프라는 물론 새로운 소프트웨어 기반의 처리 과정들을 등장시켰고, 결국 이를 운용할 핵심 인력이 뒤따라야 했기 때문이다.








콘텐츠 생태계에서 필요한 직업적 가치 


그렇다면 콘텐츠 산업에 종사하는 또는 기꺼이 참여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일단 콘텐츠의 제작 영역은 이 관점에서 제외하고, 제작 이후의 가치사슬에 주목하고자 한다.


첫째는 기술이 주도하는 변화의 과정에서도 여전히 창의력이다. 영화를 포함해 부가가치가 높은 다수의 콘텐츠는 최초 제작 이후 후반 제작이라는 두 번째 창작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콘텐츠 속성에 맞는 색과 음이 보정, 수정된다. 모든 영화가 거치게 되는 Digital Intermediate(DI) 작업은 이미지 속성과 컬러를 다루는 대표적인 영화 콘텐츠 제작의 최종 작업이다. 티브이, 휴대폰 등 하드웨어의 해상도 기술이 정점에 이른 최근에는 영화 외에 드라마, 다큐멘터리 콘텐츠 제작에도 DI를 포함한 후반제작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들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보다 콘텐츠의 예술적 가치를 이해하고, 작업을 통한 콘텐츠 가치의 제고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둘째는 기술적 노하우 역량이다. 필름이 사라진 현대에는 콘텐츠의 제작과 유통 모든 영역에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의존도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DI를 포함한 콘텐츠의 후반 재제작은 물론, 타 플랫폼 유통을 위한 포맷 변환 작업, 저장과 보관 작업 등 모든 분야에서 소프트웨어 운용능력을 요구한다. 현대 사회에서 콘텐츠 생태계는 철저하게 IT 기반 하에 움직인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콘텐츠 유통 가치사슬 의 내부에서 자신만의 핵심 수단(tool)을 갖는다는 것은 경쟁력 있는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소프트웨어와 장비는 꾸준히 업데이트된다는 사실도 인지해야 한다.


마지막을 강조하고 싶은 것은 협업(cooperation)과 관련된 것이다. 콘텐츠는 제작부터 배포 이후 마지막 저장 과정에 이르기까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작업 영역이 없다. 유기적으로 맞물린 각 단계의 기능 이 가진 특성과 요구사항을 이해하고, 유연한 소통과 협력으로 대응하는 것이 곧 역량의 잣대가 된다. 기술 수준이 향상될수록 콘텐츠 생태계는 이른바 속도의 전쟁이 심화되고 있다. 산업 내 타 기능영역의 여건을 이해하지 못하면 결코 유용한 생태계 내부의 자원(useful resource)으로 자리 잡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정교하게 기획되고 잘 정리된 정보의 시대에서 수많은 유형을 가진 대량의 콘텐츠 소비시대로 전환하는 시기에 살고 있다. 만일 직업이라는 가치를 콘텐츠 산업이나 생태계 내부에서 찾고자 한다면, 광속으로 순환하며 움직이는 그 가치사슬의 단계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작은 경험의 기회일지라도 의미 있게 수용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현상필(CJ 파워캐스트 미디어사업본부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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